근로시간 단축 '졸속 흥정'… 기업은 피가 마른다

입력 2017-11-28 17:42  

News & View

국회 환노위 합의 일단 불발

비정규직·최저임금 이어 산업현장 '트리플 악재'
추가 인건비 연 12.3조… 중소기업 "다 망한다" 비명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중소기업에 연간 8조6000억 '인건비 폭탄'

정부, 노동계 '촛불 청구서'에 서둘러 추진
최저임금 인상도 임박… "왜 하필 이 시기에"
근로시간 줄면 근로자 실질소득 감소할 듯



[ 최종석/좌동욱 기자 ]
산업 현장은 국회의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를 피 말리며 지켜보고 있다. 개정안은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가 거듭됐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정치권과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경제계는 패닉에 가까운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마저 단축하는 ‘트리플 악재’가 덮치면 인건비가 큰 폭으로 치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인력을 추가 채용해야 하는데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들엔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또 회사가 초과근로 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해 근로시간을 줄여버리면 근로자의 실질임금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식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주일에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에 12시간의 연장근로와 16시간의 휴일근로를 합쳐 68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다. 정치권 논의대로라면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합쳐 12시간까지만 인정돼 최대 한도가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지난 23일 환노위 여야 간사(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들은 근로시간 단축 방향에 잠정 합의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근로시간 단축 적용의 유예기간을 차등 설정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내년 7월 △50~299인은 2020년 1월 △5~49인은 2021년 7월부터 시행하는 내용이다. 휴일 근무는 중복 할증을 인정하지 않고 현행 규정대로 통상임금의 50%만 할증하기로 했다. 이 합의 내용을 토대로 이날 환노위 고용노동소위 논의가 이어졌다.

정치권 내에서도 이견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용득·강병원 의원이 반대하고 나섰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28일 오전 양 노총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시간 단축 차등 적용과 휴일·연장근로 중복할증 불인정은 노동개악이라고 반발했다.


◆인건비 상승 감당할 수 있나

국회가 여야 간 이견 속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을 기정사실화하고 나서자 기업들엔 초비상이 걸렸다. 통상임금 소송에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노동 현안이 줄줄이 불거지는 데다 당장 한 달여 후면 한꺼번에 16.4%나 인상되는 최저임금으로 인건비가 다락같이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울산에 있는 모 자동차 부품제조기업의 부사장(CFO)은 “원화 강세로 수출채산성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와중에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까지 이뤄지면 회사 살림이 적자로 돌아설지 모른다”며 “고용을 늘리기는커녕 있는 직원들의 월급이나 제대로 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회 논의대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연간 12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여야 합의안에서 제외된 휴일근로, 연장근로수당 중복할증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1754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26만6000여 명을 추가 고용하는 데 따른 직·간접 비용이다. 특히 전체 비용의 70%인 8조6000억원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집중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인건비 부담을 지면서까지 사람을 채용하려 해도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지난 정부도 추진했다. 2015년 9·15 노·사·정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시행시기를 기업 규모별로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1000인 이상은 법 개정 후 1년, 300인은 2년, 100인은 3년, 5인 이상 기업은 4년간 유예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 들어 노동계가 ‘촛불 청구서’를 앞세워 목소리를 키우고 정부도 국정과제로 채택하면서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거의 졸속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국회에서 근로시간 논의가 지연되면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바꿔서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방침을 언급했다.


◆“국회·정부, 산업현장 현실 외면”

현행 고용부 행정해석에 따르면 1주일은 5일이다. 법정 근로시간(40시간), 연장근로시간(12시간) 이외에 휴일근로는 별도로 인정되는 이유다. 노동계와 정의당 등은 이 해석을 바꿔 1주일을 7일로 보면 연장근로가 7일 동안 12시간만 인정되므로 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정부뿐만 아니다. 사법부도 근로시간 단축을 압박하고 있다. 휴일에 일하는 경우 휴일근로수당(50%)과 연장근로수당(50%)을 중복해서 할증할 것인지에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가운데 대법원은 2012년 이후 지난 5년여 동안 최종 판결을 미뤄오던 터였다. 대법원은 내년 1월18일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법조계에선 공개변론 후 2~3개월이면 최종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제계는 정치권·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추진에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가 산업현장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정치논리에만 매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10대 기업의 노무담당 임원은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에게 실질 수당·급여 감소를 초래하고 기업엔 가파른 인건비 상승 부담을 안겨주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거에 법 개정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제도 시행 및 정착까지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한 사안과 관련해 적용시점까지 불과 6개월여 앞두고 근로기준법을 전격 개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산업현장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종석 전문위원/좌동욱 기자 js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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